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RMS 타이타닉 (문단 편집) ==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침몰선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타이타닉호 영화.jpg|width=100%]]}}}|| || '''영화 [[타이타닉(영화)|타이타닉]]에서의 모습''' || >'''One of the most famous tragedies in modern history, it inspired numerous stories, several films, and a musical and has been the subject of much scholarship and scientific speculation.''' >'''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[[비극]] 중 하나로 수많은 이야기, 몇 편의 영화, 뮤지컬에 영감을 주었고 많은 학문과 과학적 추측의 주제가 되어왔다.''' >---- >[[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]][[https://www.britannica.com/topic/Titanic|#]] 타이타닉은 단연 '''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침몰선'''으로, 사고 후 1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며, 대중매체 등에서 많이 다뤄진다. 사실 타이타닉보다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는 무려 40건이 넘어서 최다 사망자를 낸 해상사고는 아니지만, 많은 경우 전쟁 중 침몰이 대부분이었다. 특히 대부분이 2차대전 관련 침몰인데 이 역시 비극이지만 전쟁피해라 해상사고와는 다르다.[* 예를 들어 전함은 아니지만 1941년에 독일 어뢰에 격침된 병원선 아르메니아는 5천~7천여 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를 냈지만 이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케이스로 여겨진다. 위에 언급된 "빌헬름 구스틀로프"는 역사상 가장 많은 9천 명 이상 사망자를 냈지만 이는 소련 측의 공격에 따른 것이었다.] 수천만이 죽어가는 전쟁 중이 아닌, 평시에 갑자기 천 명 이상이 죽었으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. [[9.11 테러]]의 희생자는 다른 전쟁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, [[뉴욕|평화로운]] [[맨해튼|대도시]] [[세계무역센터(붕괴 이전)|한복판]]에서 일어났기에 더욱 충격을 준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. 그런데 전쟁 중 침몰을 제외하고 평상시에 일어난 사고로만 쳐도 타이타닉은 사망자 수 7위[* 역사상 기록된 평화시기에 일어난 선박 침몰사고 중 사망자 1위는 [[도냐 파즈호 침몰 사고]](1987년 필리핀, 4,386명 사망), 2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1782_Central_Atlantic_hurricane|중앙 대서양 허리케인]](1782년 영국, 약 3,500명 사망), 3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SS_Kiangya|SS 캉야]](1948년 중화민국, 2,750~3,920명), 4위 [[르 줄라호 침몰사고]](2002년 세네갈, 1,864명), 5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Tek_Sing|텍싱호]](1822년 청나라, 약 1,600명 사망), 6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MV_Spice_Islander_I|스파이스 아일랜더 1호]] (2011년 탄자니아, 1,573명 사망) 다음으로 7위이다.]에 머무른다. 하지만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. 1. 기록이 너무나 상세히 남아 있었다. 2차 대전 당시 침몰한 '레닌'은 민간 화물선이었고 4천 명 이상 사망자가 났을 거라 추정되지만 기록이 부실해 그 추정치가 천 명 미만으로 떨어지기도 한다. 반면 타이타닉의 기록은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상세하다. 특히 이 사고는 당시 세계 최강 국력을 자랑하던 대영제국과 미합중국 양국 의회가 즉시 특별조사단을 꾸려 감사에 착수했기 때문에 물샐틈없는 초동 진상조사가 이루어졌다. 1. 유명인들이 다수 타고 있었다. 아래에도 나오듯이 세계적인 부자와 명사 및 귀족들이 탑승해 있었으며, 이들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. 특히 탑승객 중 존 제이콥 애스터는 [[애스터 가문]]의 일원이자 세계적인 부호로 이 사람만 죽었어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만한 사람이었고[* 실제로 66년에 폐간된 New York Journal-American이란 신문은 사고 당시 소식을 전하며 피해 규모로 애스터가 죽었고, 1,800여 명의 사망자(실제 규모랑 다르게 잘못 전달됨)도 나왔다고 전할 정도다. 애스터가 죽은 후 그의 유산을 나누기 위해 공식적으로 평가된 그의 자산은 약 8천7백만 달러였는데, 이는 현대로 치면 23억4천만 달러 규모이며 당시 미국에서 공식평가된 자산 규모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. [[https://news.google.com/newspapers?id=cEssAAAAIBAJ&pg=6166%2C3485431|#]] 물론 동시대에 자산이 무려 9억 달러로 추정되는 존 록펠러, 3억 달러로 추정되는 앤드류 카네기 같은 존재도 있지만, 이는 후대 언론의 추정이며 공식평가된 수치는 아니었다. 게다가 록펠러가 카네기가 역사상 가장 부자라고도 불리면서 애스터보다 확실히 더 부유했다고 해도, 이들은 강도 귀족이라고 불리면서 애스터 가문에게 격에게 밀렸다. 강도 귀족라고 불릴 만큼 이들이 축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자들이지만, 그런 이들도 애스터 가문을 상대로는 양보해야 할 정도였다. 즉, 애스터 가문은 재산과 품위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었고, 그런 가문의 당주가 존 제이콥 애스터였다.] 그 외에 메이시 백화점의 소유주나 귀족도 있고, 심지어 선장도 유명했다. 1. '''당시 세계 [[패권국]]인 [[대영제국]]'''의 배였고 피해자들 역시 열강국민인 '''영국인들과 미국인들'''이 대부분이었다. 1912년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중 하나였고, 미국은 한창 떠오르는 부유한 나라였다. (전근대와 근대, 현대를 모두 통틀어서) 평화시기 최대 사망자수를 낸 해양사고는 1987년에 유조선과 충돌하며 4,386명의 사망자를 낸(생존자 24명) 필리핀의 여객선 "[[도냐 파즈호 침몰 사고]]"였지만, 이 경우는 이름조차 아는 이도 별로 없다. 안타깝지만 언론에서 필리핀 사고에 주목하는 정도와 미국/영국의 사고에 주목하는 정도는 차원이 다르다. 당장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 전부 서방세계에 위치하기에 당연한 일이다. 1. '''배도 유명했다.''' 당시 타이타닉은 세계 최대 규모, 최첨단 기술, 초호화 등 온갖 수식어를 달고 언론의 주목을 받던 배였다. 대륙간 이동이 현재와 비교할 수도 없이 드물던 시기에, 2등석 티켓 가격이 다른 웬만한 배의 1등석 가격일 정도로 호화롭고 고급스러운데다 거대하기까지 한 배니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. '''이런 엄청난 배가 첫 항해 때 빙산에 충돌해 수많은 사망자를 냈으니,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.'''[* 타이타닉이 실제와 달리 '불침선(unsinkable)'이란 수식어를 얻은 것도 언론의 오버 속에 나온 것이었다.] 1. '''첫 항해'''에 침몰했다. 선술했듯 타이타닉은 첫 항해 때 [[북대서양]]에서 빙산에 충돌해 침몰했다. 20세기쯤 오면 웬만큼 허접한 배라도 첫 항해에 침몰하는 경우는 드물다. 특히 타이타닉은 웬만한 배가 아니라 당시 서구권에 그 정도 규모의 배에선 매우 드문 침몰 방지 격벽 시스템까지 적용된 배였다. 이 배의 안정성을 믿고 위에 언급된 부자들이 타고, 구명보트까지 줄일 정도다. 그런데 그런 탄탄한 배가 첫 항해에 침몰했으니 충격적인 것이다. 1. '''이야기'''가 많다. 다른 대형사고를 보면 알겠지만, 저 정도 규모의 배가 저 정도 많은 피해자를 낸 경우 대부분 폭발이나 어뢰 격침이다. 즉, 뭔가 할 시간도 없이 바로 죽는 경우가 많아 사고 외에 다른 이야기거리가 별로 없다. 그런데 타이타닉은 두 시간에 걸쳐 침몰하면서 탑승객들이 온갖 행동을 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기에[* 같은 원리로 항공기계에서 '''단일 항공기 최악의 참사'''로 유명한 [[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]]는 문제 발생 이후 조종사들이 필사적으로 버텨 30분간 비행을 계속했고, 그 시간동안 수많은 승객들이 마지막 말을 남기거나 기내를 촬영해 둘 수 있었으며, 그 덕에 일부 사망자들의 유서가 공개되며 일본을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다.] 침몰 직전까지 연주한 악단, 끝까지 최선을 다한 [[상선사관]]을 비롯한 선원들, 승객들을 위로하며 기도해 준 성직자,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한 여러 1등실 승객들, 탈출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을 택한 스트라우스 부부 등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화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. 1. 마지막으로 이런 유명세가 갖는 부수효과로 '''대중매체'''가 엄청나게 많이 다뤘다. 세계적으로 유명한 1997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 관련 논픽션 책,[* 특히 난파된 타이타닉을 최초로 발견한 로버트 발라드 박사의 탐사기를 다룬 책이 유명하다.] 다큐멘터리, 라디오 드라마, 영화 등 타이타닉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이 나왔고, 1997년 이전에도 서구권에서는 가장 유명한 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. 실제로 같은 영국 배란 것 외엔 딱히 연관점이 없고, 퇴역 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박물관 및 호텔로 활용되는 퀸 메리 호에도 1996년 당시 한 구석에서 타이타닉에 대한 정보와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될 정도. 유명하니까 드라마, 영화 등에 계속 나오고, 이것 때문에 더 유명해지고, 관련 연구가 더 이루어지고, 이에 입각해 또 다른 매체에 나오고 하는 순환이 수십 년간 계속되면서 불멸의 유명세를 얻은 것이다. 한국에서도 1997년 영화 이전에 교과서에 승객탈출 과정에서 신사도를 발휘한 부분이 실리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